마피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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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좋은 친구들, 카지노… 여러분은 이런 영화들을 보고, 이 모든 인물들을 알고, 그들이 말하는 방식을 사랑하고, 그들의 대사에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누군가가 ‘이봐, 당신 재밌는데(Hey, you’re funny),하고 말하면 당신은 본능적으로 대답한다.
‘뭐가 재밌어? (Funny how?) 내가 광대야? 내가 당신 웃길려고 온줄 알아?’ (from ‘Goodfellas’)
드라마와 액션과 피와 유머는 여러분의 흥미를 자아낸다.
이탈리아 마피아영화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들중 얼만큼이 사실인가? 그들은 조직화된 범죄 신디케이트를 정확히 그려내고 있나? 이 모든 광기는 어디에서 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나?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여러분은 진실을 탐구하고 이탈리안 범죄조직의 사실에 입각한 역사와 그것이 어떻게 해서 실화가 되었는지를 알기를 바란다.

먼저 마피아라는 단어는 무슨 뜻인가.
‘마피아’라는 단어의 정확한 유래는 확신할 수 없지만 몇몇 사람들은 1282년 프랑스의 시실리 침략 때 생겨난 말이라고 믿는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MAFIA는 “Morte Alla Francia Italia Anela” (프랑스인에게 죽음을, 이는 이탈리아의 절규다 Death to the French is Italy’s Cry)의 약자라 한다.
그 뒤 ‘mafia’라는 단어는 시실리 말로 ‘남자다운’이라는 뜻이 되었다.

또다른 설에 의하면 ‘mafia’의 어원은 일찌기 9세기부터라 한다.
그 시대의 시실리는 아랍에 지배되고 있었는데 억압받던 원주민들은 피난처를 찾아 필사적으로 탈출하였다. 아랍어로 ‘mafia’는 ‘피난’이라는 뜻이다.
시실리는 11세기에 노르만인들의 침략을 받아 주민들은 또다시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등 억압받는다.
그 후로 시실리가 받은 모든 침략은 (12세기의 프랑스 침략, 13세기의 스페인 침략, 그 후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스) 토착 부족들이 언덕과 섬등으로 피난처를 찾아가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피난자들은 결국 시실리안의 전통에 기초한 ”가족’이라는 뜻의 통일체를 만들기 위하여 고도로 발달된 비밀 사회를 건설한다.
조직의 구조는 가족이라는 개념 위에 세워졌고 강력한 계급조직의 구성을 지녔다.
‘돈’들은 마피아의 두목이며 각 마을의 마피아들을 지배했다. 그들은 시실리의 수도인 팔레르모에 살고 있는 ‘돈 중의 돈’에게 보고해야 했다.

통합된 조직체의 일원은 입회시에 맹세를 요구받았다. 맹세란 마피아의 근본을 이루고 있던 (그리고 현재도 이루고 있는) 다섯가지 기초적인 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1.침묵의 법칙-절대 다른 조직원을 배신하지 말라. 조직의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 고문, 혹은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을 지라도.

2.보스에의 철저한 복종-무슨 일이 있어도 보스의 명령에 따르라.

3.원조-존경받을 만한, 혹은 친구가 된 마피아 파벌에게는 필요한 도움을 준다.

4.복수-패밀리의 일원이 공격을 받을 경우에는 복수를 해야 한다. “한명을 해치는 것은 모두를 해치는 것이다”

5.당국(공공기관)과의 접촉을 피한다.

마피아는 19세기에 크고 강력하게 성장해 거대한 범죄중심의 사회가 되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권위와 법칙을 따르고 다른 일체의 형식이나 명령을 무시했다. 마피아에 입문하는 것은 종교에 입문하는 것과 같았다. 일생을 사로잡히는 것이다.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아주 젊은 마피아 조직원에게도 진지한 ‘종교’였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희생자들을 살해하기 위해 장검, 단검, 끈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밀고자에게는 매우 가혹한 죽음이 선고되었다.

‘라 코스트라 노스트라’라 불리운 미국의 마피아 분가는 시실리에서 은행가인 에마뉴엘 노타르바르톨로를 살해한 후 뉴욕으로 도망간 돈 비토 카스치오 페로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1920년대에 무솔리니가 시실리에서 마피아의 근절을 시도하자 더 많은 마피오소(마피아 조직원)들이 미국으로 도망갔다. 마피아는 미국에서 돈을 벌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수천의 총잡이와 도둑들이 건너갔다. 보다 나은 생활을 찾는 수천의 이탈리아인과 시실리인들이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1900년대 초 미국의 모든 대도시에 각각 마피아 제재법이 생겼다. 그들은 밀수에 주목했다. 그들은 곧 협박을 통해 도박,매춘,밀주같은 일들로 다른 구역에 세력을 확장해 갔다. 금주법시대(1920년대)는 아마도 갱서트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시대일 것이다. 마피아 조직원들은 공공연히 자신의 힘과 부를 드러냈다. 마피아는 번성했다. 이로부터 알 카포네의 군림은 시작되었다. (영화에서 그려지듯이, Untouchales-즉 손댈 수 없었다) 알폰소 카포네 ‘스카페이스’는 밀주와 여자를 팔아 재산을 축적한 시카고의 갱스터였다. 금주법이 끝난 후 갱스터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신디케이트, 혹은 조합으로 재편성해 도박,매춘,마약의 배포등 새로운 형태의 ‘사업’을 관리했다.

카포네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갱스터-찰스 ‘럭키’ 루치아노, 혹은 보스중의 보스(카포 디 투티 카피)로 더 유명한 살바토레 루카니아가 떠올랐다. 이탈리아인이나 시실리인들과만 손을 잡았던 카포네와는 달리 럭키 루치아노는 인종적인 문제에 구애되지 않았다. 그는 조직에 유태인들을 끌어들였다. (영화 카지노에서 처럼) 루치아노는 그의 파트너 벤자민 ‘벅시’ 시걸 과 마이어 랜스키와 가까이 지냈다.
벅시 시걸은 라스베거스에 수퍼 카지노를 세웠지만 이익을 보기도 전에 살해됐다. 그의 죽음후 십년 안에 라스베거스는 갱스터들의 거래와 투자, 탈세의 주요한 거점이 된다.

루치아노의 갱들은 뉴욕의 반대편을 다스리는 주세페 마세리아 ‘죠 더 보스'(지금의 제노베스 패밀리의 첫번째 보스로 알려진)와 살바토레 마란자노 (지금의 보난노 패밀리이 보스)의 ‘순수한 시실리안’ 갱들과 언제나 대립관계에 있었다. 루치아노는 결국 카스텔라마르스 전쟁으로 알려진 수많은 ‘마피아 전쟁’끝에 마세리아를 무너뜨린다. 루치아노는 마세리아의 조직을 흡수해 막강한 보스가 된다.

마세리아가 죽기전 그는 카를로 감비노라는 이름의 남자를 그의 그룹에 받아들인다. 마세리아가 살해당했을 때 감비노는 살바토레 마란자노의 밑으로 힘을 이동시켰다. 마란자노가 죽고 죠 보난노가 그 뒤를 계승하자 카를로 감비노는 새로운 위원회 ‘영 터크스Young Turks’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감비노는 처남인 피터와 폴 카스텔라노와 함께 빈센트 망가노와 연합한다. 망가노가 원인불명으로 실종되자 감비노는 찰리 루치아노와 그의 동료 프랭크 코스텔로에게 동맹(평화 조약)을 요구했다.

망가노의 실종후 알버트 아나스타시아가 보스가 되어 카를로 감비노를 차기 보스로 지명했으나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따. 그 무렵 감비노는 약골 취급을 받고 깎아 내려져 아나스타시아에게 비웃음을 사고 있었다. 다른 어떤 조직원도 거스를 수 없었다. 아무도 그무렵의 감비노를 위협으로 생각지 않았던 것이 뜻밖의 일을 매우 쉽게 만들었다.

1957년 비토 제노베스라 불리운 한 남자가 감비노에게 아나스타시아의 제거를 교섭했다. 이것이 감비노를 정상의 자리에 올려주었다. 아나스타시아에게 진저리가 난 감비노는 그를 처치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제노베스는 힘에 굶주려 있었다. 그는 모든 패밀리를 다스리고자 했다. 그는 무자비하고 광적이었다. 감비노는 그가 완전히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전에 그를 막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새로운 동맹인 루치아노, 코스텔로와 함께 감비노는 제노비스를 마약중독의 혐의를 씌워 15년형으로 감옥에 집어넣는다.

감비노는 F.B.I와 C.I.A가 그를 추방하거나 법정에 세우려 할때마다 심장발작이라거나 무슨 수를 써서든 병원으로 도망가는 등 회피를 계속했다. 교묘하기 짝이 없는 계략이었다.

뉴욕의 반대편의 보난노 패밀리는 당국의 손길을 피하는 데 그리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보난노의 조직원 필립 ‘러스티’ 라스텔리니는 카민 갈란토의 뒤를 이어 보스가 되었다. 라스텔리가의 정상의 두 남자는 도미니크 ‘소니 블랙’ 나폴리타노와 벤자민 ‘레프티 건스’ 루기에로였다. 그들은 F.B.I 비밀첩보요원의 실화에 기초한 영화 도니 브래스코에서 죠 피스톤 (도니 브래스코)로 그려진다. ‘소니 블랙’과 ‘레프티 건즈’가 저지른 범죄는 발각되었다. ‘소니 블랙’은 실종되고 ‘레프티’는 감옥에 갔다.

1970년대 초에 프로파시 패밀리의 보스 죠셉 콜롬보가 이탈리아계 미국인 시민 권리 연합(IACRL)을 결성함으로 인해 마피아는 불필요한 국가적인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카를로 감비노는 콜롬보에 맞서 언론의 주의를 끄는 것을 그만두라고 요구했다. 콜롬보는 이를 거절했다. 소문에 의하면 콜롬보는 감비노의 얼굴에 침을 뱉았다고 한다. 격노한 감비노는 갈로 형제 (죠 와 래리)에게 콜롬보의 제거를 의뢰한다. 그는 콜롬보를 죽임으로써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IACRL에 자신을 거스르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고자 했고 아이러니컬하게도 폭력 조직과 콜롬보가 연합을 통해 후원하고 있던 이탈리아계 미국인의 전통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것은 ‘돈’에 대한 무례의 복수와 응징이었다.

말년에 감비노는 폴 카스텔라노를 패밀리의 수령으로 지명한다. 카스텔라노는 탐욕스럽고 혐오스러운 자였다. 감비노가의 조직원들과의 마찰이 원인이었다. 카스텔라노는 마피아라기 보다는 은행가처럼 신중했다. 감비노는 패밀리가 거리에서 합법적인 사업으로 옮기는 뜻을 품고 있었다. 1895년 카스텔라노는 또 다른 젊은 터키인 존 가티 (감비노에게 지위를 빼앗기고 달아난 아나스타시아 수하의 보스 델라크로스의 제자)에게 살해당했다. 가티는 알버트 아나스타시아 이후 그 어떤 마피아보다도 요란하게 언론에 노출되었다.

존 가티는 80년대 말 세번의 각기 다른 공판에서 방면됨으로써 ‘테플론 돈’으로 알려졌다. 결국 1991년 F.B.I는 가티와 그의 부두목 새미 ‘더 불’ 그라바노, 프랭키 로카씨오를 협박과 살인, 모반과 탈세등의 혐의로 기소한다. 그라바노는 오메르타를 깨고 가티에 대한 증언을 함으로써 충격을 줬다. 그라바노는 목격자 보호를 받으며 5년 이하의 형을 복역한다. 가티는 종신형을 선고받아 일리노이주의 연방교도소에 갇힌다. 그의 아들 죤 가티 2세는 현재 감비노 범죄 패밀리의 보스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라 코스트라 노스트라 (LCN)을 구성하는 현재의 뉴욕 5대 패밀리:감비노, 제노비스, 콜롬보, 보난노, 루케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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