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릿 짜던 블로거

감동!

템플릿 짜던 블로거
원작: 윤오영, 방망이 깎던 노인
모작: sirocco


템플릿 짜던 블로거
원작: 윤오영, 방망이 깎던 노인
모작: sirocco

벌써 일 년 전이다. 내가 블로그를 쓴 지 얼마 안 돼서 내 계정에 설치해 쓸 때다. 컴퓨터 앞에 앉은 김에 새로 올라온 글을 읽기 위해 블로그 코리아에서 일단 클릭질을 멈춰야 했다.

블코 리스트 아래쪽에 템플릿을 짜 주겠다는 글이 있었다. ‘파리의 연인’ 보기 전에 블로그 리뉴얼이나 해 보려고 짜 달라고 덧글을 달았다. 시간을 굉장히 널널하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빨리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템플릿 하나 가지고 시간을 보채려오? 급하거든 네이버 지식인에 글 올리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블로거였다. 더 닥달하지도 못하고 만들어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코드를 짜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짜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거 고쳐 보고 저거 지워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손대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저장해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드라마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드라마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다듬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일 만큼 끓여야 라면이 되지, 사발면에 냉수 붓는다고 라면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쓸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손본단 말이오? 님아, 외고집이시구려. 드라마 시간이 없다니까…..”
그 블로거는
“다른 데 가 받으시우. 찌질이 KIN.”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생깔 수도 없고 드라마 시간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짜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무겁고 복잡해 진다니까. 코드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짜다가 배째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코드 짜던 메모장을 숫제 백그라운드로 돌려 놓고 태연스럽게 모니터에 모질라를 띄워 블코의 새 글 목록을 읽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블로거는 또 템플릿 짜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코드는 다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템플릿을 갖고 이리저리 테스트해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템플릿이다.

드라마를 놓치고 재방송을 봐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코딩을 해 가지고 인기 블로거가 될 턱이 없다. 방문객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블로거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모니터를 들여다보니, 그 블로거는 태연히 포스팅을 하고 블로그 코리아의 인기글 Top5에 올라와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블로그다워 보이는, 그 모니터에 뿌리는 메인 인덱스, 그리고 부드러운 색배합과 간결한 인터페이스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그 블로거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집에 와서 템플릿을 내놨더니, 아내는 예쁘게 짰다고 야단이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면, 글꼴이 너무 크면 글을 읽을 때 전체 내용이 잘 파악 안 되고, 같은 내용이라도 스크롤을 많이 해야 되며, 글꼴이 너무 작으면 눈가에 주름이 펴지지 않고 어디를 읽는지 놓치기가 쉽다는 것이고,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블로거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초창기부터 내려오는 Nucleus는, 기능을 추가하고 싶으면 플러그인을 찾아다 받고 계정에 업로드를 하고 설정을 곧 잡아 주면 설치가 완료되어서 좀처럼 아쉬움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가입형 블로그는, 버그가 생기면 서비스 회사에서 해결하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 예전에는 블로그에 문제가 있을 때, 분위기 좋은 포럼에서 물어보고 조언을 구한 후 비로소 해결한다. 이 곳을 ‘wik’라고 한다.

가입형 블로그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가입형을 쓰면 RSS 제공은 되는지, 트랙백이 지원되는 것은 어디라는 식으로 구별했고, 무료 서비스는 3배 이상 인기가 있었다. 무료화란, 블로그 서비스에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약관을 보아서는 용량 제한이 있는지 예쁜 스킨은 사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가입하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평생 무료를 고수할 리도 없고, 또 ‘기본 서비스는 무료’라는 말만 믿고 가입을 할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가입형은 가입형이요 설치형은 설치형이지만, 블로깅을 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좋은 글을 올린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인기 블로그를 만들어 냈다. 이 템플릿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블로거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블로깅을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블로거가 나 같은 초보에게 – _-凸와 ‘즐드셈’을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좋은 블로그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블로그를 찾아가 덧글에 트랙백이라도 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파리의 연인’이 끝나는 길로 블코를 찾았다. 그러나 그 블로그가 있던 블코에 RSS는 등록되어 있지 아니했다. 나는 블코가 띄워진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오른쪽 블코의 Top5를 바라다 보았다. 푸른 제목이 굵게 쓰여진 Top5 아래로 트랙백 디렉토리의 테이블이 깨어져 있었다. 아, 그 때 그 블로거가 저 깨어진 테이블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템플릿을 짜다가 유연히 Top5 아래의의 테이블을 바라보던 블로거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동생이 핸드폰으로 싸이를 하고 있었다. 전에 무버블 타입을 웹호스팅까지 옮겨 가며 설치하던 생각이 났다. 좋은 블로그를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블로기어워드가 열린다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애수(哀愁)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일 년 전, 템플릿 짜던 블로거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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