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 우파의 역사적인 유래 [펌:홍세화]

2001년 2월. 어쩌다 이쪽으로 빠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무심결에 흘러가게된 듯 하다.

인사모 답변 중.. 1

좌파와 우파에 대하여…

가장 쉬운 게 실은 어렵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 사상, 사회, 역사, 경제 등
접근에 따라 다르게 말할 수 있지요.

그런데 워낙 광범위한 얘기여서
여기서는 다만

-다 아는 얘기겠지만- 좌우라는 말이 생긴 유래만 얘기할테니
나머지는 만나서 얘기하면 어떨까요?

질문하신 분도 그 동안 책을 읽고 공부좀 하시구요.
토론하면서 나도 배우고 싶어요.

지금은 귀국 준비 때문에 좀 바쁘기도 하네요.
귀국하여 홈쥐 식구들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해보면 더 유익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유래에 대하여만 간략하게 말하겠습니다.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이었어요.
루이 16세 왕실은 재정이 매말라 곤경에 처했습니다.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의 사치를 비롯하여
베르사이유 궁전에서의 호사 생활과 미국의 독립전쟁 지원비 등으로

빚을 엄청나게 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당시에는 신흥계급이었던 시민들만 세금을 부담했고

특권층이었던 귀족들과 성직자들은 면세 혜택을 받았습니다.
신흥계급들은 워낙 불만에 차있었는데 세금을 더 내라고 하니 불만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 때는 미국의 독립, 볼테르, 룻소 등 계몽사상가들의 자유 사상 확산 등으로
시민 계급이 눈을 뜨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했지요.

곤경에 처한 루이 16세는 할 수 없이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이 일반회의는 다른 말로 ‘삼부회의’라고도 하는데

성직자들과 귀족들과 시민 대표의 셋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대표를 제3신분이라고 부른 것도 여기서 유래하지요.

처음부터 회의는 난관에 부딪혔는데
의결 방법을 시민대표는 머리수의 투표를 통하여 하자고 했고

귀족과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대표성으로 하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귀족과 대부분의 성직자의 주장은 결국 자기들은 세금 부담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3분의 2의 표를 확보한 주장을 편 셈이니까요.

이 때 회의 석상에서 시민대표들은 왕의 왼쪽에 자리잡았고
귀족과 성직 대표들은 오른쪽에 자리잡았었습니다.

이것이 좌우라는 말의 유래입니다.
당시 왼쪽에 앉았던 시민 대표들은 당연히 ‘변화’를 요구했고

오른쪽에 앉았던 귀족과 성직자들은 ‘보수- 지금처럼’을 요구했지요.
그래서 좌파를 흔히 변화-진보 세력이라 부르고

우파를 보수세력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당시 진보 세력이었던

시민 계급이 나중에 보수세력화하는 것은
혁명을 통하여 귀족 계급이 사라지고 가톨릭세력도 약화되면서

바로 그들이 ‘지금처럼’을 주장하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좌파와 우파는 고정적인 게 아니라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좌파이냐 우파이냐의 큰 갈래는 진보냐 보수냐로 구분지을 수 있겠지요.

당시에 귀족 중에 미라보 백작같은 이와 성직자중에 하급 성직자 중에는
시민 대표와 합류하기도 했었는데, 아무튼 회의는 끝내 결렬되었고

또 당시 시민들에게 인기를 누리던 재무상을 왕이 쫓아내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격앙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여러분도 알고 있는

대혁명으로 치닫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 정도로 하고 나중에 만나서 얘기하도록 하지요.

그럼 이만 줄입니다.

인사모에 올라온 답변 중.. 2

우선 유시민님의 글을 빌어 이야기하겠습니다.

“공산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환경주의자, 자유주의자,
그리고 보수주의자가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경쟁하는 유럽의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자신과는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의 존재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적 태도는 모든 ‘주의자’의 기본이다.
이 기본을 갖추지 못한 세력은 ‘극좌’와 ‘극우’로 분류된다.
(……)
좌파의 모든 ‘주의자’들은 극좌와의 연대를 거부한다.
우파의 모든 ‘주의자’들도 극우와의 제휴를 거부한다.”

그니까, 우파와 극우, 좌파와 극좌는 반드시 구분이 되야겠지요.
홍세화님의 글을 빌어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신학철 화백의 < 모내기>가 파기 환송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예술 표현의 자유라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가 극우 헤게코니에 짓밟힌 것이다.
여기서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짓밟는 극우의 헤게모니를 읽는다.
이 판결을 두고 ‘한국 사회의 보수적 시각의 벽을 느끼게 하는 판결’
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보수적 시각이 아니라 극우적 시각이다.
보수는 간직해야 할 가치를 전제한다.
(……)
그것은 한국 정치현실에서 보여지는 극우와는 오히려 상반되는 개념이다.
(……)
한국 정치영역에서 진보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극우와 보수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얘기가 아니다.
(……)
이젠 그와 같은 함정, 스스로 팠거나 극우세력이 파놓은 함정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한마디로 보수를 극우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자유민주주의를 극우에서 해방시키자는 말이다.
(……)
한국에선 반세기 동안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던 극우세력이
스스로 보수라 칭했고 더욱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언론개혁을 진정으로 부르짖는 지식인들 모두는
‘조선일보’를 ‘극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스스로를 ‘보수’라 칭하는 발칙한 행각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우파와 보수에 관해서는 ‘우리모두’에서 읽은 글을 빌어 이야기하겠습니다.
“우파는 평등보다는 자유가 우선적인 가치이며
평등의 지나친 추구는 자유를 억압한다고 봅니다.
따라는 우파는 이념적으로 자유주의입니다.
이 자유주의는 가끔 보수주의로 불리기도 합니다.
(……)
다시 말해 보수주의라는 것은 결국 급진적인 변화를 거부하는 입장,
좋은 것은 이미 옛날에 다 나왔으니
그것을 근본적으로 거부해서는 안되다는 입장,
더 나아가서는 새것들로 오염되기 전의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간단히, 윗글만을 읽어보더라도
조선일보는 ‘보수’가 아니라 ‘극우’임을 절실히 깨달으셨을겁니다.
보충설명은 김정란 교수님의 글을 빌어 이야기하겠습니다. (헥헥~~~)

” 조선일보를 ‘극우적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데 해해서,
과연 조선일보가 ‘극우적 파시스트’인가,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일보에 계속 기고하는 지식인들의 항변은
사실 조선일보가 극우지로 판명된 적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그들은 조선일보가 언제 나치처럼 사람들을 아우슈비츠에 보냈으며,
인종주의를 찬양한적이 있느냐고 말한다.
이것은 모다 꼼꼼한 논증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나는 그렇게 묻는 논자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지금의 맥락에서 나치와 똑같은 주장을 할 극우주의자들이 과연 있을까?
‘극우’는 과연 20세기 초 독일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던
집단적 광기의 정신적 이념만을 가리키는 말인가?
자신과 같은 의견을 제외한 어떤 의견도 모두
‘빨갱이’라고 의시하는 이 집단을
20세기 초 독일에 데려다놓았더라면 과연
나치와 다르게 행동했을까?
광주를 피바다로 만든 전두환을 ‘구국의 간성’
이라고 치켜세우고 배를 불린 집단,
자신들의 법통을 잇기 위해서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며,
박정희의 신화를 써내는 등 역사왜곡까지 서슴지
않는 이들의 현재의 맥락에서 나치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는가?
지금 현재의 맥락에서 조선일보는 분명히 ‘극우’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조선일보가 프랑스의 르펜처럼 대놓고
인종차별주의를 표방한다면 그렇게 위험할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조선일보가 교묘하게 그들의 실상을 감춘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맥락에서 내놓고
나치의 방식으로 극우를 찬양했다가는 당장 구독자수가 감소할테니까 말이다.
지금은 어떤 하나의 집단을 판단할 때
단순히 정치적인 이념의 선언으로
정신적 스펙트럼을 규정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매우 포괄적이며 종합적인 방식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렇게 분석했을 때,
조선일보는 건전한 보수가 아니라, 매우 위험한 ‘극우’이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자기드에게 이득이 되는 것만이 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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