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p.104
12. 편협함은 두 가지 요소에서 시작된다. 하나는 무엇은 옳고 무엇은 그르다는 관념이다. 또 하나는 상대가 광명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가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관념이다. [중략] 말다툼은 차이의 정당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관점을 수용하도록 강제하려는 실력 행사로 전라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클로이의 구두를 싫어한 것도 나는 그 구두를 싫어할지 몰라도 구두 자체에 원래 싫어할 만한 본질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어떤 (물질이든 사람이든) 존재의 본질에는 옳다 그르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왜 그것에 대해 좋다 혹은 좋지않다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면 나는 굽이 없는 구두 특히나 천으로 만들어진 굽이 없는 구두를 보고 싶지 않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거나 어떤 원인이 있는게 아니다. 그냥 보기가 싫을 뿐이다. 만일 여자 친구가 그런 구두를 신는다면 조용히 얘기하겠지만 그것에 대해 내가 강제할 수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지나친 대화로 가기전에 그만두게 될 것이다. 결국 말하고 싶은것은 가볍게 시작된 말다툼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치닫게 되는 경우는 대게 이런 편협함으로 인한 것이다. 또 한가지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