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

김윤아 “내 음악의 원천은 불행”

자우림 과는 또다른 그녀만의 매력이랄까…

loveyuna

[김윤아] “내 음악의 원천은 불행”

자우림의 김윤아, 그의 카리스마는 한없이 선하고 약한 영혼을 지켜주는 갑옷이었네…

그를 만나서 인사를 하고 내가 내뱉은 첫마디는 바보 같게도 “어 정말 김윤아가 내 눈앞에 있네”였다. 제기랄… 창피하게 이게 무슨 소리람 딴따라의 딸로 태어나 나 역시 딴따라로 살면서, 난다 긴다는 수많은 딴따라 속에서 살아오며 웬만해선 기가 눌려본 적이 없는 나였거늘….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만남은 배우와 관객의 관계처럼 하나의 기싸움이다. 관객에게 주눅 든 배우에게 공연이 잘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그의 노래가 갖는 카리스마에 매혹당한 난 내 입에서 바보 같은 이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이번 인터뷰가 순조롭긴 이미 글렀음을 감지해버렸다.

아닌게아니라 그는 인터뷰하러 나온 사람 맞나 싶게 마음을 쉬 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음을 보여줬다.

스스로를 위안하려고 시작한 노래


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똑똑했고 더 어른스러웠으며 더 단단한 사람처럼 보였다. 예상이 가장 빗나간 부분은 어이없게도 내가 가장 확신한 부분인, ‘음악을 하는 이유’였다(음악 듣고, 책 한권 읽었다고 그의 정신세계를 다 파악했다고 생각했다니…).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세상을 살아간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수많은 환자들의 공통점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보통사람의 인생이 그러한데 관객의 박수를 먹고사는 딴따라들의 삶은 말해 무엇하랴.

배우인 나 역시 평생 관객을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공연 때마다 관객이 많기를 바라는 이유 역시 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연습한 건데 아무도 와주지 않으면 배우로서의 존재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내 ‘재주’를 보고 웃고 울고 하는 걸 보면서 갖는 쾌감, 결국 그 쾌감을 잊지 못해 계속 이 짓을 하는 것이며 내가 여태까지 만난 딴따라들 어느 누구도 다른 이유를 대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위와 같은 대답이 나올 걸 예상하고 음악 하는 이유를 물었다. 다분히 공격적이라고 할 만큼 당당하게 그리고 딱 부러지게 대답하는 그의 입에선 “아니오. 그렇지 않은데요”란 소리가 나왔다.

어찌어찌하다 환상의 팀워크를 이루는 자우림 멤버가 구성됐고 노래가 너무 좋아 그냥 띵까띵까 만들고 불렀는데 좋아해주니까, 그리고 돈까지 주니까 참 좋고 고맙긴 하단다. 그러나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음악을 하는 이유가 음악이 없인 하루도 살 수 없는 나 자신을 위해서고 관객이 한명도 없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해도 자우림은 지금과 똑같이 음악을 만들고 자기들끼리 부를 거란다. 음악이 더 이상 돈을 벌어다주지 않으면 다른 걸 해서 먹고살더라도 지금 자신들이 하는 음악엔 조금도 변화가 없을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른 멤버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자신은 남들이 자기 노랠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히 그리 큰 관심이 없고 멀어질까봐 두렵지도 않단다. 어차피 자기 스스로를 위안하려고 시작한 노래기 때문에. 팬들이 들으면 실망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단호했다. 당황한 나는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 건 그래도 누군가 한명이라도 봐주길 원해서 쓰는 거 아닌가요”라고 했더니 아니란다. 인터넷에 글쓰는 작업 역시 순전히 ‘일기’ 쓰는 마음으로 쓸 뿐 어떤 ‘관계’도 바라지 않는다고. 4집에 있는 노래 가운데 9·11 사태를 보고 쓴 가사가 있기에, 그건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느냐고 했더니 “아무것도 전달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냥 쓴 거다. 내 노래 하나 따위가 세상을 변화시킬 리 없지 않은가”라는 대답이 날아온다. 그의 음악들이 대부분 냉소적인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밴드 자랑할 땐 진정 행복해보이더라


사진/ “난 그의 노래가 천재성을 잃어도 좋으니 그가 슬픔의 부채감에서 하루빨리 해방되면 좋겠다.”위 왼쪽은 필자. (김종수 기자)


그는 그렇게 얘기하진 않았지만, 혹시 나처럼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일을 한다는 딴따라들을 위선자라고 비웃는 건 아닐까 딴따라의 전신은 무당이었다. 무당은 확실히 남을 위로하는 사람이다. 아주 오래전엔 정치·종교·경제 그리고 의료행위 등의 모든 것들이 다 무당의 몫이었다. 무당은 절대적 존재였다. 김윤아는 당신들이 감히 스스로 무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위로하기 바빴다. 무슨 상처가 그리 많기에 음악만이 유일한 안식처고 음악이 없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걸까 자신의 음악활동의 원천은 불행이라고 그는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100%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음악 따윈 필요 없을 거란다. 그는 명랑하게 웃지만 그의 노래들은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고 소통의 단절을 가슴 아파하며 세상을 끝없이 비웃는다. 그런 가사가 나오는 까닭을 물었더니 그냥 자기 속에 어두운 면이 있나 보다 하고 웃어넘긴다. 하지만 그는 그의 책에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여러 번 경험하고 나서 알 수 없는 죄책감에 빠졌고, 심지어 자신의 일생이 다른 사람의 죽음을 연료로 해서 굴러가는 게 아닌가 하는 망상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책에 쓰기까지 한 얘길 다시 묻진 않았다.

그 죽음들 가운데엔 남자친구 죽음도 있었다. 상처가 컸다. 연애관도 상당히 섬세하다 못해 냉소적이기까지 했다. 더듬이 끝으로 열심히 날 경계하던 느낌이 스르르 사라지면서 자신의 사랑론을 들려준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당신이 쉴 곳이 없다”는 말을 절실히 이해하는 경험을 했단다. 이상주의자여서 연애를 실패하는 것 같단다.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이 어느 날 갑자기 싫어지면 관둘 수 있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묻는다. 사랑도 어느 날 갑자기 싫어지면 툭 끝내버릴 수 있는가 그렇단다. 한창 인기를 얻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하나도 보고 싶지 않다는 데 이르러서는 소름이 돋는다. 내가 자길 너무 어둡게 본다고 느꼈는지 그는 갑자기 명랑한 체하며, 자신은 만화중독이고 관심 있는 분야는 패션과 쇼핑이라며 웃음을 보인다. 묻긴 했지만 밴드의 결속력은 좋은 게 그거밖에 없나 싶을 정도로 자랑한다(밴드 자랑할 땐 그가 유일하게 진정 행복해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를 만나지 말걸…

난 그를 음악천재라고 믿는다. 천재가 아니고서야 그런 음악과 그런 노래 실력이 나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난 그의 창작활동의 원천이 불행이라는 얘길 들을 수밖에 없는 이날의 인터뷰를 후회해버렸다. 그를 만나지 말걸… 그랬음 그가 괴로워하건 말건 힘들어하건 말건 난 그의 불행을 자양분으로 태어난 그의 음악만을 즐겼으리라. 하나, 난 이미 인간 김윤아를 사랑하게 됐음을 커밍아웃할 수밖에 없다. 여린 사람일수록 강한 척하는 법이다. 나는 그의 카리스마가 한없이 선하고 약한 그의 영혼을 지켜주는 갑옷역할을 하는 거였음을 알아챔과 동시에 내가 그를 아주 많이 좋아하고 있음을 느꼈다. 자우림. ‘자주색 비가 내리는 숲’이라니 너무 슬프다. 난 그의 노래가 천재성을 잃어도 좋으니 그가 슬픔의 부채감에서 하루빨리 해방되면 좋겠다. 그가 혹 허락한다면 그의 친구가 되고 싶다.

영화배우 오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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